나도 어느덧 교만해 질 수 있다

차명훈 목사

2020-11-25

성경묵상의 나눔: 다니엘서 4:28-37

자신의 반반한 외모로 인해 사람들이 자기에게 지나치게 관심을 갖기에 자꾸 교만해지려 한다고 말하는 여성에게 상담자가 그 여성의 얼굴을 보더니, “현실을 바로 보고 대화를 시작해야 하는데, 자매님의 문제는 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착각의 문제인 듯 싶습니다.”라고 했다.

겸손함과 교만함은 전혀 상반된 모습이다. 둘 다 한꺼번에 가질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겸손함은 어느 사이엔가 교만함으로 굳어져 바뀔 수 있다. 한편 교만도 꺾어져 겸손으로 내려앉을 수 있다. 그것이 인생이다. 그러므로 언제나 내 안에서 겸손과 교만은 잔존한다. 그것부터 깨닫는 것이 겸손의 시작이 아닐까? 교만의 깊은 뿌리는 죄성이고, 겸손의 깊은 회복은 하나님의 은혜에서 시작한다. 이것을 아는 것이 교만을 죽이는 시작이다.

오늘 묵상인 다니엘서 4:28-37은 느부갓네살의 교만으로 시작한다. “내가 세운 이 도성, 나의 권세와 능력, 나의 영화와 위엄을 보아라...(28절).” 그리고 겸손으로 바뀐 왕의 모습으로 마친다. “그 분은 참되고, 공의로우시며 교만한 이를 낮추신다(37절).”

교만의 위기는 자신의 교만을 이제는 깨닫지 못할 때부터이다. 느부갓네살도 완전히 망할 뻔한 교만이었는데, 다행히 그는 연단을 통과하면서(33절) 회복되어 새 삶을 살아간다(36절).

그 회복의 기회가 어디서 왔는가? 낮은 자리에서 고통스러울 때 철저한 깨어짐과 (다니엘의) 해석해 준 말씀 앞에서의 순종과 가장 높으신, 하늘의 하나님(34절)을 주인삼을 때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의 교만은 엄청나게 표시나는 악한 것이 아니다. 그저 주님은 잊고, 주님없이 내가 해보려고 하는 나의 모습이 교만인 것이다. 그렇게도 교만했지만, 시련 속에 낮아지고 하나님만을 높이는 느부갓네살의 회복을 주목해 본다. 우리도 그의 교훈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나의 교만을 알아채리고 주만 신뢰하는 겸손으로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