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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쫓는 공동체

차명훈 목사

2020-02-06

성경묵상의 나눔: 요한복음 9:13-34 한번 생각해 보자. 내 삶이, 내가 참여하는 모임이, 나의 교회가 우리끼리만 좋아서, 찾아오는 불편한 사람은 “내쫓는 공동체”가 아닌가를. 바리새인과 종교지도자들은 자기들이 붙들고 있는 나름대로 정돈된 율법을 자꾸 건드리는 예수가 싫었다. 자기들의 영역에 두고있는 하나님을 자꾸 건드리는 예수가 너무 불편하기만 했다. 사람들이, 심지어 지도자들 사이에서도 자꾸 예수의 표적들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일 수 있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16) 위기의식과 적대감으로 그가 미웠고 죽여 치워버리고 싶었다. 그래서 이제는 예수가 메시야라고 말만 하면 출교(22), 유대공동체에서 내 쫓기로 하였다. 맹인되었던 사람의 말과 간증에 귀를 막고 그를 내 쫓아버린다(34). 내쫓는다는 것은 문을 닫아버리는 것이다. 우리끼리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처지에 있는 사람에 대해 불쌍히 여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나만 옳고, 하나님이 우리 공동체에 계신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온 인류의 하나님은 긍휼이 없는 굳어버린 율법, 제사, 종교를 원하시지 않는다. 사랑의 예수님은 요한복음 속, 곳곳에서 내쫓으시는 분이 아니라. 보시고 부르시는 분이시다. 제자들을 이곳 저곳에서 보실 때마다 부르셔서 제자 삼으시고, 환자들을 보시고 부르셔서 고쳐주시곤 하셨다. 성령님의 열정은 꼭꼭 숨었던 제자들에게 임하셔서는 그들을 쫙 뿌리셔서 세상으로 들어가게 하셨지 자기들끼리만 기뻐하게 두시지 않으셨다. 우리만 살자는 공동체는 사람을 “내쫓는 공동체”이다. 생명이 없고 있다해도 가물가물할 뿐이다. 지금 태어나서부터 눈먼 자가 광명을 얻고, 하나님의 하신 일들을 어린아이처럼 증거하고 있다(25, 31). 그 모습을 보며, 그 고백을 들으며, 눈물이 흘러 나오고, 가슴이 울컥하며 기꺼이 안아주어야 할 그 자리에, 먼저 믿는 자라는 사람들이 문닫고 내쫓는 일을 하고 있다. 지금도 예수님은 죄에 눈먼 자들을 찾아 앞서 가신다. 그리고 오늘도 우리에게 보내신다. 그들을 “내쫓는” 죽은 신앙이 될 것인가? “품어지는” 산 신앙이 될 것인가? 잊지말자. 하나님의 사랑, 예수님의 은혜, 성령님의 감동으로 채우는 사람은, 세상에서 대단해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레 자신이 죄인의 자리로 낮아지는 것이다. 우리 모두를 내쫓지 않고 불러주신 그 하나님의 사랑으로 온 열방을 품고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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