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앞에서, 어느 길을 갈 것인가?
차명훈 목사
2020-04-09
성경묵상의 나눔: 마가복음15:1-15
요즘같이 하루하루가 생존으로 각박한 세상에서, 이 세상에서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야 하는가를 생각하고 고민하는 사람은 철학자의 심성일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나는 어떤 삶을 살고, 그 분 앞에 어떻게 나아가야 할 것인가라는 성도로서 구도자의 자세이다.
본문에서 이제 십자가를 향하여 나아가시는 예수님은 공회에서의 불의한 재판을 받고, 빌라도 앞에 서게 된다.
그 분은 이미 예상하셨지만, 불법의 재판과 모함, 선동과 광기 속에서, 예수님은 마음부터 벌써 못이 박히고 있으시다. 저들이 그래서는 안된다는 것을 아는 우리들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흔들리는 군중으로?
하나님의 음성은 들어보지 못하고, 공회에서 의논하고(1) 결정한 것이니 옳다, 십자가에 못 박으라(13, 14) 외치는 집단주의처럼, 우리도 세상법과 정보, 과학상식, 문화유행따라 민족끼리만 와치며 살아갈 것인가?
율법에 안주하는 대제사장처럼?
내가 결정하고 내가 끝장을 내야한다는, 고발하고 충동하는(3, 11) 대제사장들처럼, 우리도 자기가 주인인양 착각하며 하나님의 은혜와 회개를 잃어버린 인생으로 나도, 가족도, 이 사회도 고집스레 파멸로 끌고 갈 것인가?
양다리 걸친 빌라도처럼?
뭔가 잘못된 것을 알아도, 죄가 없는 예수를 보아도, 무리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15) 예수를 죽음에 내어주는 빌라도처럼, 우리도 몸사리고 “안전 안전”외치며, 주님사랑을 따르기 위한 도전과 위기를 회피만 할 것인가?
복수의 칼을 가는 바라바처럼?
이제 풀려나 더욱 힘주어 “민란 밖에 해결이 없다!” 더욱 외치고, 증오의 칼로 로마 병사의 옆구리를 찌를 바라바(15)처럼, 증오의 마음으로 힘을 키운 복수만이 해결이라 외치며 살 것인가?
그런데 예수는 “내가 왕이다(2). 내 나라는 이 땅이 아닌 아버지의 나라 천국이다” 라고 한마디만 하시고, 침묵으로(5) 이 길을 가신다. 십자가의 길, 부활의 길, 영생의 길을 사랑으로 끝까지 가시며 우리에게 영생구원의 길을 남기실 것이다.
이 시간 마음에 주의 음성을 듣는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그대는 누구인가? 이리저리 흔들리는 군중인가, 율법에 안주한 제사장인가? 양다리걸친 빌라도인가? 복수의 칼을 가는 바라바인가?
아니면 세상에 진정한 평화를 줄 예수사랑, 십자가의 길의 Follower인가? 가장 약해 보여도, 가장 무기력해 보여도, 가장 강력하고 영원한 것이 사랑이다. 하나님의 사랑, 예수의 사랑이다. 그것만이 우리의 길이요 소망이다.
이 고난 주간에 어느 길도 아닌, 오직 예수님의 가신 그 길을 베푸신 구원의 사랑을 감복하며 우리 모두 따라가자. 험한 세상 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