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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 선교사처럼 우리도 지역 선교사이다

차명훈 목사

2020-07-30


성경묵상의 나눔: 로마서 4:9-17

본문은 유대인들의 할례와 무할례자인 이방인 모두에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것임(16절) 바울은 일깨운다. 모세가 받은 율법 이전에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의로운 자가 여김을 받았고 하나님을 그의 믿음처럼 예수를 믿음을 통해 열국을 구원하시길 계획하셨다는 것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예수를 모신다면 그 지역의 선교사가 되는 것이다. 아브라함도 선교사이다. 하나님이 그에게 이름을 주실 때에 “열국의 아비”라 주신 그 의도를 평생 잊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 안에서의 열국의 종”이란 의미로서의 그리스도인도 다를 바가 없다.

그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여김을 받았다. 모든 민족이 그로 말미암아, 그처럼 믿음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선교사의 마음을 가진 아브라함의 소원이었다. 우리의 눈과 마음도 열방, 열국을 향해 점점 열려지고 넓어져야 한다. 점점 닫혀지는 것은 무슨 핑게를 대더라도 지역 선교사로 제대로 사는 것이 아니다.

이제 그의 민족에게 할례를 행하면서 선택받은 민족들이 되었다. 열국을 향해 쓰임받을 제자들이 일어날 것을 생각하며 아브라함 선교사는 얼마나 기뻤을까! 선교사의 평생소원은 나보다 나은 현지인 제자들의 배출이 아닌가! 그러나 할례는 하나님의 백성의 표시가 아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유대식 표시이다. 오늘 우리에게는 성령께서 구원받은 자로서 인치신다.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성령의 임재로 새로운 피조물의 삶을 사는 영적 할례를 받기를 소원하는 지역 선교사가 되자.

아브라함은 유대인, 이방인, 가족과 종들이 모두 한가족으로 품은 선교사이었다. 하란으로 가나안으로 향해 가는 길에 모두가 함께 생활하며 살아가는 한 가족이었다. 선교사의 위대함은 수많은 영혼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많던 적던 주님이 하시는 일이다. 선교사는 그곳 사람들을 가족으로 삼아 예수의 마음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16b).” 우리 모두 사람때문에 실망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포기않는 아버지같은, 어머니같은 지역 선교사로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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