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을 잃으면 은혜가 반쪽납니다
차명훈 목사
2020-06-15
성경묵상의 나눔: 신명기 31:19-29
처음 예수를 믿을 때부터 지금까지 찬송이 언제나 은혜가 되어 주를 향하게 만들어 준다.
처음 믿을 때에, 전도하던 형이 바이올린을 가져와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를 연주할 때 찬송에 꽂혔고, 신앙에 마음이 열렸다.
유행가처럼 제멋대로 부르는 성가대원 입문 시절, 앞의 권사님이 듣다 못해 (^^) 지적하신 한마디가 지금도 부끄럽다 (나야 첫사랑에 충만해서 열심히 불렀지만).
목회하면서 예배 때 부르는 찬양과 홀로 부르는 찬양에서 주님을 기억하고 새 힘을 얻곤 한다. 찬양이 좋으니 어깨너머로 기타도 배우고, 피아노도 홀로 만져보고, 요즘은 내 눈과 손가락이 우크렐라와 악보 사이를 헤맨다. 찬양이 없다면, 찬송가가 없다면 주님과의 교제가 신앙생활이 얼마나 삭막할까!
오늘 말씀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후에 가나안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멀리하고, 그 결과로 재앙과 환난을 당할 때에 기억하도록(19, 21) 노래를 가르치라 하신다. 비록 노래가 도구이지만 말씀이 담긴 찬양은 말씀의 반쪽이라 깨달아진다. 그러므로 찬송, 찬양의 생활을 잃어버리면 은혜의 생활을 반쪽만 누리는 것이다.
노래와 찬양은 하나님의 것이지만, 곡조와 리듬이 있는, 강한 교육적 효과가 있는 말씀이다. 어느 사이에 노래 속에 말씀이 내 안에 채워지게 하며, 어릴 때에 부른 찬송이나 동요가 평생 가슴에 남아있게 된다.
주님은 우리의 지으신 목적이 “이 백성은 나를 위해, 내게 찬송을 부르게 지었다(사43:21)”고 하셨다.
우리 일반인의 찬양의 수준은 성악가의 수준과 전혀 다르다. 우리의 수준은 주님사랑과 성령의 만져주심 속에서 곡조있는 말씀, 리듬있는 기도로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이면 충분한 것이다. 아기의 불분명한 목소리조차 들으며 기뻐하는 부모처럼 주님은 분명 기뻐하시며 들으신다.
성경말씀은 묵상과 암송 속에서 의지적인 부분이 많이 강조되고, 찬송, 찬양은 고백가운데 감성적인 부분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우리가 건강하려면 말씀과 찬양, 양쪽 모두가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책을 펼쳐 읽고 찬송가를 부르고 사는 것이다. 그러기에 성경을, 찬송가를 책으로든, 프로그램으로든 결코 내 손에서 잃어버리지는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노래, 찬양은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도구이다. 오늘도 우리 모두가 비록 흥얼거리는 수준의 찬양이 있고, 흘려듣는 차 안에서의 찬양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배드림 속의 힘찬 찬양도 있다. 당신의 그 찬송함이 휘청이는 자신의 영혼을 이끌어주고, 세속에 혼탁해지는 내 영혼을 정결케 해주는 체험이 되기를 바란다. 반쪽의 은혜, 찬양이 살아나 주님과의 더 깊은 교제의 생활이 되기를 바란다.